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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통술박물관

<객원기자 허시명의 술빚는 마을을 찾아서>(::향음주례와 전주의 술::)

賞春曲 가락 맞춰 한잔에도 풍류가…


전북 전주는 술맛나는 동네다. 전주에는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술 문화가 있다.



가장 최근에 생긴 것으로 ‘가맥’을 꼽을 수 있다. 처음 전주친구가 “너 가맥 먹을래” 할 때, 나는 ‘과메기’를 말하는 줄알았다. 포항(구룡포) 과메기가 어인 일로 전주까지 진출했단말인가 의아했다. 그 친구가 나를 데려간 곳은 길가의 슈퍼마켓이었다. 그 슈퍼의 야외테이블에 앉아 병맥주를 마시는데, 맞은편슈퍼에 ‘가맥 팝니다’라고 쓰인 글자가 눈에 띄었다. 가맥은‘가게 맥주’의 준말이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냥 넘길 수없는 게 있었다.



우선 안주가 달랐다. 주인아저씨가 연탄 화덕에서 직접 구워낸갑오징어와 북어안주가 무척 실하고 감칠맛났다. 게다가 양념 맛이 독특했다. 그 양념 맛에 가맥 매출이 춤출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다른 도회지의 여느 슈퍼 앞 풍경을 상상해선 곤란하다. 전주의 가맥은 여름에 야외 테이블 한두개 놓고 하는 장사가 아니었다. 슈퍼의 기능은 역대합실 매점 정도로 퇴화되었고, 모든 공간을 맥주 테이블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맥주집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게에서 파는병맥주 값에, 오징어값 정도만 받을 뿐이다. 잠 안오는 늦은 밤,슬리퍼를 끌고 트레이닝복 차림에 골마리(허리춤)에 손을 넣고집을 나와 가맥을 한잔 하고 돌아가면 딱 어울린다. 그런데 안주비싸지 않고 술값 부담없어 좋지만, 내 눈에는 전주의 빈약한경제가 낳은 풍경으로 비쳐 마음이 무거웠다.



가맥보다 좀더 연원이 깊은 것으로 전주 막걸리가 있다. 아마도우리나라에서 1인당 평균 막걸리 소비량이 가장 많은 도시가 전주일 것이다. 그만큼 전주에는 막걸리집이 성황을 이룬다. 막걸리 집도 유별나다. 3000원짜리 막걸리 한통을 시키면 안주는 공짜다. 안주도 시시껄렁하지 않고 푸짐하다. 파김치, 고사리, 시금치, 파래, 주꾸미, 고등어조림, 호박전, 파전, 동태찌개, 조개탕따위의 10여가지 반찬과 찌개가 따라나온다. 그날그날 술집 주인의 장바구니에 담긴 찬거리에 따라 안주는 약간씩 달라진다. ‘이렇게 많이 줘서 남는 게 있을까’싶을 정도로 나온다.



안주가 좋으니, 전주에서는 약간 과음을 해도 좋다. 더욱이 전주에는 그 유명한 콩나물 해장국이 있지 않은가. 뚝배기에 담겨나오는 콩나물국에는 밥과 날계란이 함께 들어있다. 내가 찾아간곳은 삼백집이었다. 하루 준비한 콩나물국 삼백 그릇만 팔고 그만 팔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지금은 삼백의 경계를 훌쩍 넘었지만, 삼백집을 포함한 콩나물 해장국집에서는 술도 판다. 바로모주(母酒)다. 모주는 지역에 따라 막걸리의 동의어로 쓰이는데,전주의 모주는 다르다.



모주는 술의 기운을 빌려 만든 해장음료다. 모주 제조법은 음식점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맛은 비슷하다. 삼백집 주방에 들어가보았더니, 모주를 팔팔 끓이고 있었다. 막걸리를 받아다가,약재를 넣고 3시간 정도 끓인다. 알코올은 섭씨 78도면 증발하기때문에, 모주에는 알코올 성분이 거의 없다. 주인은 모주 먹고음주 단속에 걸린 사람은 여태껏 한명도 없다고 했다. 술은 술이되 알코올 없는 술인 셈이다.



뜨끈한 콩나물해장국에 모주 한잔을 들이켜니, 그래도 얼굴에 열기가 올라온다. 뜨거운 콩나물국 기운인지 술기운인지 가늠되지않는다. 허나, 속은 화악 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모주 맛은 오래 달인 한방음료 같다. 대추맛이 진하고 계피향도 강하다. 주인은 흑설탕과 밤, 생강, 그밖에 몇가지 한약재가 더 들어갔다고한다. 술색은 짙은 밤색이다. 한 사발에 1500원이다.



전주에는 양념 좋은 가맥, 안주 공짜 막걸리, 속 푸는 모주만 있는 게 아니다. 술에 대한 예의범절도 있다. 전주에 사는 고현동향약 재현추진위원장인 김환재(85)옹을 만났다. 그를 만나러 간날이 무성서원 춘향대제(春享大祭)가 열린 날이었다. 무성서원은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데, 대원군 때 훼철되지 않은 전북 유일의 서원이다.



고운 최치원과 불우헌 정극인(1401∼1481)을 포함해 이 지역과인연을 맺은 유학자 7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서원에는 1475년에 작성된 고현동향약(보물 제1181호)이 전해온다. 1556년 퇴계가 작성한 예안향약보다도 81년이나 앞선 것으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향약이다. 이 향약은 정극인이 75세 때, 한 동네에사는 경주 정씨, 강진 김씨, 여산 송씨, 청도 김씨와 더불어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 향약은 독특하게도 향음주례(鄕飮酒禮)를중심으로 짜여 있다.



향음주례는 술 마시는 예법을 통해서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이웃과 화목하기를 권장한 의식이었다. 조선 성종 5년(1474년)에 ‘국조오례의’가 편찬되면서 본격적으로 실시된 제도이니, 고현동향약은 향음주례를 선구적으로 시행한 규약인 셈이다.



고현동 향약의 서문에는 “향음주례는 훌륭하다. 한 고을 사람들이 서로 친목하면, 능멸하고 죄짓고 다투고 송사하는 풍속이없어진다. 중국 주나라 때에 사람마다 선비나 군자의 행실이 있는 것은 향음주례를 공부시켰기 때문에 그렇다”로 시작한다.



김환재 위원장은 어렸을 때 증조부로부터 향음주례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헌에 따라, 홀기에 따라 2001년에 무성서원에서 향음주례를 재현했다. “옛말에 일배백배(一杯百拜)라 하여술 한잔에 절 백번 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양주를 물마시듯하는퇴폐적인 풍조를 경계하기 위해 재현했습니다”라고 했다.



실제 향음주례의 절차는 대단히 느리고 복잡하고 까다롭다.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여, 술을 한잔 대접하기까지의 동작이 102 단계로 나뉠 정도다. 술을 마시고 나서는 “술은 고상한 음식입니다.



술은 신성한 음식입니다. 술맛이 아름답습니다” 따위의 술을숭상하는 말도 한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술을 배우고 권했다.



향음주례에는 악기와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 고현동에서 실시된향음주례에서 불린 노래로,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이 있다. 아마도 정극인이 향음주례를 위해 만든 노래인 듯싶다. ‘상춘곡’은 고려말 나옹화상의 ‘서왕가(西往歌)’가 보고되기 전까지 가사의 효시로 꼽히던 수작이다. ‘상춘곡’을 듣다보면 향음주례에는 까다로운 격식만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여유와 풍요로움이, 옛 사람들의 술잔 속에함께 담겨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넷 사람 풍류랄미칠가 못 미칠가…화풍이 건듯부러 녹수랄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단날다려 알외여라. 소동(小童) 아희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얼은은 막대깁고 아희난 술을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야 시냇가의 호자안자 명사(明沙) 조한 물에 잔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랄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


출처~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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