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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통술박물관

제22부 술의기원(4)

술의 기원 4부

1. 우리나라 술의 유래

우리의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술 또한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문헌에 술에 관한 기록이 드물지라도 우리 민족이 발효문화에 친숙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화북지역에 거주했던 우리의 선조인 동이족의 술문화가 중국과 한반도에 동시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 술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술의 유래도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술을 빚는 기술도 자연발달하여 우리의 토속주인 여러 가지 술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역사와 문헌 등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술의 유래를 시대별로 검토하였다.


1) 삼한시대의 술


제조법 : 삼한시대에는 곡주를 바탕으로 제조했는데 그 제조방법은 알 수 없으나 누룩을 사용한 것 같은 흔적은 엿볼 수 있다.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이 땅의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의 군중 대회에서는 밤낮으로 식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삼국 및 통일신라의 술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1년편에 의하면 지주(旨酒 ; 맛 좋은 술이란 뜻)란 말이 나온다.

동해석사(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서는 당대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의 ꡐ한 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ꡑ라는 시를 소개해 놓았다. 당대 문인들 사이에 신라주의 인기가 자못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술 빚기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동화되면서 독특한 술까지 빚게 된 것으로 짐작되며 실제로 일본고사에는 우리에게서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3) 고려시대의 술

제조법 : 고려 시대에는 송․원대의 양조법이 도입되었으며 전래 곡류 양조법이 발전되어 국(麴 ; 누룩)의 종류도 소맥국(小麥麴)과 미국(米麴)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주품도 다양해졌다.

고려 때에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 풍속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들이 발달된 것 같다.

현종(顯宗;1140년)때에는 그 폐단이 심하여 사찰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하게 된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면서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는데, 이는 몽고의 침입(1274년)으로 소주 고리의 이용 방법이 도입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 보너스


전통 증류주의 뿌리


전통민속주로 유명한 안동소주, 문배주, 고소리술, 진도홍주 등 증류주의 뿌리는 어디일까?

이런 전통주는 기마병과 독한 술로 무장한 몽고의 고려 침입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을 것이다. 고려가 몽고에 항복한 후 고려지배를 고착화하기 위해 개성, 안동 등지에 기지를 두었는데그런 기지가 있었든 곳은 어김없이 유명한 증류주가 존재한다.이때부터 내려오든 증류주류가 현재 안동의 안동소주, 개성의 문배술 등으로 명맥을 이어 나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몽고의 고려지배를 대항하여 항몽전의 선두에 섰던 삼별초의 항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강화도와 진도, 제주도를 잇는 항몽루트를 따라 탐라총관부 등 몽고의 기지가 세워졌고, 이들의 영향을 미쳤든 증류주류가 진도에는 진도홍주, 제주도에서는 고소리술 등의 증류주로 발전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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